《벚꽃》
오일
2026 · 53 × 72.7 cm
작가 노트
어두운 줄기와 가지가 화면 왼쪽에서 대각선으로 뻗어 나오며, 그 위로 벚꽃이 폭발하듯 피어 오른다. 검고 두꺼운 선처럼 보이는 나무의 몸은 단단한 뿌리와 시간을 상징하듯 화면 아래를 깊게 짚고 서 있고, 그 위를 뒤덮은 꽃잎들은 흰색과 크림색, 옅은 분홍과 노랑이 뒤섞인 두꺼운 물감 덩어리로 표현된다. 실제 꽃잎의 모양을 세밀하게 따라가기보다, 나이프로 밀어 올리고 긁어낸 자국들이 벚꽃이 흩날리는 순간의 속도와 떨림을 대신한다. 배경은 노랑과 연두, 옅은 분홍, 하늘빛이 겹겹이 섞여 하나의 봄빛 안개처럼 번져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노란색이 짙어지며 따뜻한 햇살과 오후의 공기를 떠올리게 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푸른빛이 섞인 회색과 연보라가 번지며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차가운 공기를 남긴다. 이 색의 층들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거친 캔버스 결과 물감의 두께는, 벚꽃 아래에서 느껴지는 바람과 냄새, 빛의 온도를 동시에 품고 있다. 꽃잎들은 가지에서 조용히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막 흩어지려는 찰나처럼 보인다. 뭉개진 흰색 물감 조각들이 서로 부딪히고 겹치면서, 화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꽃구름이 된 듯한 인상을 준다. 어디까지가 꽃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늘과 공기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벚꽃은 하나의 나무를 넘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계절과 그 계절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로 확장된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관람자는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이기보다, 벚꽃 속에 한 걸음 들어와 서 있는 사람이 된다. 눈앞까지 밀려드는 두꺼운 물감의 결과, 손의 움직임이 남긴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풍경을 기억하는 감각과 화면 위의 색들이 뒤섞이며 자신만의 봄날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금세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매년 다시 찾아오는 이 흰빛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김경미scholas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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