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오일
2026 · 53 × 45.5 cm
작가 노트
거칠게 올려진 오일 물감 위로 한 마리의 소가 화면을 정면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붉은 얼굴과 귀, 파란 몸, 검은 배경이 단순한 색면처럼 맞붙어 있지만, 두껍게 쌓인 물감의 결은 그 단순함 속에 묵직한 시간을 숨겨 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칼로 긁어낸 듯한 자국과 거친 붓질이 뒤엉켜, 하나의 얼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망설임과 반복된 손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의 눈은 작고 단순한 흑백의 점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화면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부분이다. 둥근 눈동자는 위로나 아래가 아닌 정면을 향해 또렷이 열려 있고, 주변의 검은 선은 피곤함이나 분노가 아니라, 오래 참고 서 있는 존재의 고집스러운 집중을 떠올리게 한다. 뿔과 귀, 얼굴을 가르는 선들은 정확한 해부보다 감정의 윤곽을 따라 그려진 듯, 이 동물이 실제의 소와 상상의 동물 사이 어딘가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배경의 어두운 갈색과 검정은 흙바닥이자 밤하늘처럼 보이고, 그 위에 떠오른 붉은 얼굴은 하나의 덩어리 같은 생명으로 도드라진다. 파란 몸은 작업복처럼, 혹은 보호막처럼 소를 감싸며, 노동과 휴식, 일상의 무게를 함께 품은 색으로 느껴진다. 화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말없이 버티고 서 있는 이 동물이 사실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인내와 서운함, 그리고 조용한 자존심을 대신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관람자는 이 소와 마주 선 채, 단순한 선과 색 뒤에 겹겹이 쌓인 감정의 표면을 천천히 더듬게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굴이지만, 그 눈빛 앞에 서 있는 동안 각자가 견뎌 온 시간들이 조용히 떠오르며, 화면을 떠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 시선을 남긴다.
김경미scholas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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