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오일
2026 · 53 × 45.5 cm
작가 노트
옅은 회색 배경 위에 소녀의 얼굴이 희미한 윤곽만을 남긴 채 떠오른다. 눈과 입은 가느다란 선 몇 개로만 그려져 있지만, 두꺼운 오일 물감이 쌓인 피부의 질감은 마치 막 숨을 들이마신 듯 미세한 떨림을 품고 있다.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몸은 거의 형체를 잃을 만큼 단순해져, 한 사람의 인물이라기보다 화면을 지탱하는 하얀 기둥처럼 보인다. 얼굴 주변으로는 나뭇가지와 꽃들이 뒤엉켜 하나의 숲을 이룬다. 분홍과 연두, 노랑, 선명한 초록이 거칠게 긁힌 자국과 함께 번져 나가며, 실제 꽃잎의 모양을 따르기보다 손의 움직임과 감정의 속도를 따라 흘러간다. 두툼하게 올려진 물감은 꽃과 잎을 입체적인 조각처럼 튀어나오게 만들고, 그 사이사이로 회색 바탕이 비쳐 나와 조용한 공기를 남긴다. 소녀의 얼굴은 화면의 왼쪽에 치우쳐 있고, 시선은 정면을 향한 듯하지만 초점을 잃은 채 멀리 머문다. 꽃과 가지들이 머리카락처럼, 혹은 생각의 가지처럼 얼굴을 덮고 지나가면서, 인물과 배경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어디까지가 소녀이고 어디서부터가 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 모호함 속에서, 한 사람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세계가 동시에 자라나는 느낌이 생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관람자는 소녀를 바라보는 사람이기보다, 꽃들 사이에서 함께 서성이는 존재가 된다. 화려한 색채의 소란스러움과, 그 한가운데 놓인 담담한 얼굴이 만들어내는 온도 차이 속에서,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조용한 감정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특별한 이야기를 말해 주지 않아도, 화면을 가득 채운 색과 질감이 각자의 기억 속 ‘소녀’를 불러내며 오래 머물게 한다.
김경미scholastica
개인전 14회ㆍ아트페어 14회ㆍ 초대전 단체전 160 여회 전시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외 수상 다수ㆍ프랑스국제아트쇼 최우수작가상ㆍ근대일본미술협회우수상ㆍ특선ㆍ초대작가상ㆍ한국미협ㆍ마산미협ㆍ가톨릭미협ㆍ환경미협ㆍ아트몬드리안ㆍ(주)파마제약 표지작가선정 사보기재ㆍ미술은행작품선정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