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으로...》
오일
2026 · 72.7 × 90.9 cm
작가 노트
짙은 파랑과 옅은 하늘색이 겹겹이 쌓인 화면 위로, 수많은 시계가 떠다닌다. 중앙의 진한 남색 원은 하나의 큰 시계를 이루고,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원들이 행성처럼 흩어져 있다.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시곗바늘들은 규칙적인 숫자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제각각의 리듬으로 멈춰 서 있다. 숫자 1, 3, 6, 12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자리마다, 시간은 정확한 단위가 아니라 흔들리는 기호처럼 느껴진다. 배경을 가득 메운 것은 잎과 꽃의 형상을 닮은 푸른 패턴이다. 세밀하게 그려진 식물의 모양이라기보다, 여러 번 덧칠하고 긁어낸 흔적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숲 같다. 그 속에 박힌 작은 시계들은 마치 나뭇잎 사이사이 맺힌 이슬처럼, 혹은 풀잎에 내려앉은 씨앗처럼 조용히 자리 잡는다. 자연의 반복되는 무늬 위에 인위적인 시간의 원들이 겹쳐지면서, 화면은 초침의 속도와 식물의 성장 속도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중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오일 물감은 두껍게 솟구치기보다는, 얇게 쌓인 층과 작은 입자로 남아 있어, 파랑의 농도 차이만으로도 깊이감이 생기게 한다. 굵게 그어진 원의 테두리와 가는 흰 선으로 이어진 시곗바늘,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붉은 초침은 차가운 색의 바다 속에서 미세한 긴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푸른 기운이다. 이 푸른빛은 차갑기보다는, 늦은 저녁 숲 속에서 천천히 식어 가는 공기처럼, 몸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게 만든다. 이 작품 앞에 서면 관람자는 시간을 재는 사람이기보다, 시간 속에 잠시 떠 있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숫자와 바늘을 따라가려 해도 곧 잎과 꽃의 무늬 속으로 시선이 미끄러지며, ‘지금 몇 시인가’라는 질문은 어느새 ‘나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가’라는 감각으로 바뀐다. 끝없이 흘러가는 시계들의 원 안에서, 자연의 푸른 패턴은 조용히 말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또 하나의 시간이, 이미 이 푸른 화면 속에 펼쳐져 있다고.
김경미scholas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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