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오일

2026 · 53 × 53 cm

이야기·상징동물·식물·자연

작가 노트

짙은 갈색과 푸른빛이 섞인 화면 위로, 가는 선들이 끝없이 얽히며 숲을 이룬다. 오일 물감이 여러 번 덧입혀진 표면을 긁어 올린 듯한 선들은 가지이자 빛의 결이 되고, 위로 갈수록 더 촘촘해지며 하늘과 나뭇가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단단하게 서 있는 나무 기둥들 사이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숲 안쪽의 공기는 보이지 않는 무게를 품은 채 고요하게 응축되어 있다. 화면 아래쪽, 눈을 조금 낮추어야만 작은 벤치 하나가 보인다. 거친 나무색 속에서 유일하게 밝은 흰색과 연한 푸른빛을 띠는 새 한 마리가 그 위에 앉아 있다. 주변의 수많은 선들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작은 이 형체는,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숲의 결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안, 이 작은 새와 벤치는 그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쉼표처럼 자리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를 이루는 선들이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손의 움직임으로 쌓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긁고, 다시 덧입히고, 또 긁어낸 흔적들은 실제의 숲이라기보다 기억 속에서 자라난 숲에 가깝다. 나무 하나하나가 뚜렷한 개체라기보다, 겹쳐진 시간과 생각들이 엉켜 만들어 낸 배경처럼 서 있고, 그 앞의 새는 그 모든 층위를 가만히 바라보는 작은 마음의 형상처럼 보인다. 이 풍경 앞에 서 있으면, 관람자는 자신이 숲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인지, 아니면 저 벤치에 앉아 있던 이가 막 자리를 비운 뒤의 순간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애매해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장면 속에서, 나무의 결과 새의 작은 몸짓만이 조용한 숨소리처럼 남아,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요’의 얼굴을 천천히 떠올리게 한다.

김경미scholastica

개인전 14회ㆍ아트페어 14회ㆍ 초대전 단체전 160 여회 전시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외 수상 다수ㆍ프랑스국제아트쇼 최우수작가상ㆍ근대일본미술협회우수상ㆍ특선ㆍ초대작가상ㆍ한국미협ㆍ마산미협ㆍ가톨릭미협ㆍ환경미협ㆍ아트몬드리안ㆍ(주)파마제약 표지작가선정 사보기재ㆍ미술은행작품선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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