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록

Hedon’s Black Book 1

캔버스, 시멘트, 스프레이

2025 · 116.8 × 91 cm

일상·풍속·도시

작가 노트

검은 시멘트 벽 위로 분홍과 붉은 색이 번져 나오듯 튀어 오른다. 스프레이가 남긴 번짐과 뿌연 하이라이트는 글자를 명확히 읽히게 하기보다는, 한 번에 휘갈겨 쓴 충동 자체를 보여준다. 모서리가 둔하게 말려 들어간 굵은 스트로크,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검은 그림자, 가장자리에서 은은히 빛나는 하늘색 라인은, 단어보다 먼저 몸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을 썼는가보다 ‘어떻게’ 밀어붙였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식이다. 캔버스 위에 시멘트를 입히고 그 위에 그래피티를 중첩시키면서, 집 안에 들어온 한 조각의 거리, 실내로 옮겨진 벽을 만든다. 바깥의 낙서가 보통은 지워지고 덧칠되는 운명이라면, 여기서는 오히려 보호받고 걸린다. 숫자 139가 사인처럼 박혀 있으면서, 이 이미지는 익명의 태그이자 동시에 나의 일기장 첫 장처럼 느껴진다. 헤드라이트에 갑자기 비쳐진 벽, 새벽에 혼자 남아 있던 골목의 공기 같은 것들이 이 한 장 안에 눌어붙어 있다. 이 작업은 특정한 메시지를 설명하기보다, 한 번의 분사와 숨, 손목의 스냅을 고스란히 보존해 두려는 시도에 가깝다. 관람자는 이 커다란 태그 앞에서, 의미를 해독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이름이나 첫 이니셜을 떠올려도 좋다. 언젠가 몰래 마음속 벽에 휘갈겨 두었던 말 한 줄이 있었다면, 이 검은 표면 위에서 그것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을 잠시 허용해 보기를 바란다.

Hedon139의 다른 작품

작품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