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don’s Black Book 2》
캔버스, 시멘트, 스프레이
2025 · 116.8 × 91 cm
작가 노트
검은 시멘트로 거칠게 막을 세운 뒤, 그 위를 분홍과 붉은 곡선이 한 번에 휘감아 오른다. 두껍게 부풀어 오른 스트로크는 벽돌의 요철을 그대로 끌어안으면서, 글자를 쓰려 했다가도 중간에 의도를 바꾼 손목의 궤적을 남긴다. 그 위로는 하얀 스프레이가 다시 한 번 덮이며 단어를 흐릿하게 지우고, 남은 것은 문장보다 두세 번 겹쳐진 숨의 리듬이다. 무엇을 적었는지보다, 이 검은 표면 앞에서 몸이 얼마나 세게 돌진했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배경을 가르는 하늘색 면과 테두리, 위쪽에 걸린 흰 왕관 모양의 태그는 이 장면을 작은 거리의 일부처럼 느끼게 한다. 캔버스에 시멘트를 입힌 뒤 그래피티를 중첩시키면서, 집 안에 들어온 벽, 실내로 옮겨진 골목의 공기를 만든다. 보통은 지워지거나 덧칠되는 운명의 낙서가 여기서는 보호를 받으며 걸린다. 여러 겹의 색과 흔적이 서로를 덮고 밀쳐내는 구조는, 한 권의 블랙북을 펼쳐 여러 페이지를 한 장에 겹쳐놓은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이 이미지는 특정한 메시지를 주장하기보다, 한 번의 분사와 망설임, 다시 덧칠한 충동을 고스란히 붙잡아 두려는 시도에 가깝다. 관람자는 흐릿한 글자를 해독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름을 휘갈겨 썼던 순간을 떠올려도 좋다. 새벽에 혼자 남은 골목 앞에 서 있듯, 이 검은 벽을 마주한 채 마음속에만 남겨 두었던 말 한 줄을 조용히 불러내 보는 자리로 이 작품을 사용해 보기를 바란다.
Hedon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