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순간》
아크릴, 캔버스, 진주, 모델링
2026 · 30 × 30 × 2 cm
정물추상·비구상
작가 노트
둥근 캔버스 한가운데에 놓인 분홍빛 과일 단면은, 차분한 회색의 접시 위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떠오른다. 여러 겹의 회색 원은 서로 조금씩 다른 농도로 겹쳐지며, 한순간에 겹쳐진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그 중심에 자리한 작은 원은 선명한 핑크와 얇은 라인으로 둘러싸여, 상처가 난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살아 있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과일 표면을 가득 메운 작은 점들은 세밀하게 남은 기억의 흔적 같다. 하나하나가 미세한 통증의 알갱이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정리되어 화면 위에 놓이면서 더 이상 흩어지지 않는 패턴이 된다. 주변으로 길게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충격이 지나간 뒤 남는 잔향을 떠올리게 하지만, 회색의 넓은 고리 안에서 점차 부드러워지며 감정이 가라앉는 방향을 가리킨다. 아크릴과 모델링 재료가 만든 두께감 있는 원형의 가장자리는, 이 장면을 하나의 접시처럼 받쳐 들고 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잘라낸 단면을 조심스럽게 올려둔 듯, 화면은 과장된 서사 없이 상처가 머무는 모양만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품 앞에 서면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분홍색 중심에 시선을 오래 머물게 되고, 그 조용한 응시 속에서 자신의 상처의 순간을 떠올리며 천천히 거리를 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