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스침》
수채
2026 · 55 × 38 cm
작가 노트
옅은 회색과 보랏빛, 노랑과 올리브가 수직으로 스며든 화면 위로,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골목을 가로지른다. 인물의 윤곽은 최소한의 붓질로만 남아 있어 얼굴도 표정도 읽히지 않지만, 살짝 앞으로 기운 상체와 페달을 밟는 다리의 각도에서, 잠시 속도를 높여 이 시간을 통과해 가는 몸의 리듬이 전해진다. 주변의 건물과 자동차, 길가의 사람들은 번진 색과 몇 줄의 선으로만 암시될 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배경으로 흘러간다. 마치 시야 한가운데에만 초점이 맞고, 나머지는 모두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오후의 순간처럼 보인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노랑과 주황의 기운은 낮은 햇빛이 길 위에 번져 있는 공기의 온도를, 옅은 남청과 회색의 층은 그 뒤에 겹쳐진 그림자와 먼지를 품고 있다. 수채 특유의 번짐과 흘림으로 만들어진 이 색의 기둥들은, 도로 위로 길게 늘어진 빛의 띠이자, 도시를 가득 채운 소음과 기척이 한 방향으로 쓸려가는 흐름을 닮아 있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흰 선과 검은 잉크의 스케치는 전봇대와 신호등, 간판과 창틀의 구조를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공중에 남은 소리의 파형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들의 교차처럼 화면을 촘촘히 메운다. 오른편 건물의 작은 주황빛 창문과, 길가에 서 있는 인물들의 희미한 실루엣은 이 장면이 혼자가 아닌, 여러 삶이 겹쳐 있는 거리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반쯤 지워진 형태로 남아 있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와 잠시 스쳤다가 곧 잊혀질 얼굴들처럼 느껴진다. 화면 아래로 갈수록 붓자국은 느슨해지고, 물감은 바닥으로 스며들며 색의 경계를 풀어 놓는다. 이 느슨한 하단의 여백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리듬 속에서도 한 번 숨을 들이쉴 수 있는 틈처럼, 관람자의 시선을 천천히 속도를 늦추게 한다. 이 이미지 앞에 서면, 먼저 보이는 것은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의 뒷모습이지만, 조금 더 머물다 보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색과, 겹쳐진 선들의 떨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구체적인 도시 이름이나 거리의 위치를 찾기보다, 어느 오후에 혼자 골목을 지나가며 느꼈던 온도와 냄새, 스쳐 지나간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관람자는 이 흐릿한 도시의 빛 속에 자신의 발걸음이나 페달을 밟는 감각을 겹쳐 보며, 한 번 지나쳤던 오후의 스침들을 조용히 되짚어 보게 된다.
JADEN PARK
인상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개인의 감정과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큰 비중을 둡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한 해에 4,000점 이상의 작품을 그리는 열정적인 작가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전시 경험을 쌓았습니다. 개념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호한 작품을 창조하고 사물을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표현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품 속에 작가 고유의 개성과 감성을 담아내며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섬세한 색채의 조화와 감각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