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수채
2026 · 38 × 55 cm
작가 노트
옅은 회색과 미세한 보라빛이 섞인 하늘 아래, 화면은 갈대와 마른 풀, 앙상한 가지들로 가득 차 있다. 수채의 번짐으로 만들어진 연한 물빛은 화면 왼쪽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퍼져 나오며, 갈색과 올리브 톤의 땅과 맞닿는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정확한 수면의 선 대신, 젖은 종이 위로 스며든 색의 층이 공기와 물, 땅이 만나는 모호한 지대를 만들고, 그 위로 가느다란 검은 선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나뭇가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갈대 숲 사이로 드문드문 박힌 노란 점과 밝은 베이지의 터치는,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새순이자, 저녁 빛이 스쳐간 흔적처럼 남아 있다. 화면 오른쪽의 짙은 갈색과 황토색 덩어리는 마른 풀더미이면서,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를 시각화한 것처럼, 결 방향이 제각각인 붓질과 스크래치로 쌓여 있다. 수채 물감이 마르기 전에 긁어낸 흰 선들은 풀잎에 맺힌 이슬, 혹은 바람이 지나가며 남긴 미세한 떨림을 드러내며, 시선이 화면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도록 이끈다. 왼편의 물가에는 흰 새들이 고요히 서 있다. 몸의 윤곽은 최소한의 붓질로 남겨져 있지만, 주변의 번진 어둠과 대비되며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 마리는 물 위에 발을 담근 채 정지해 있고, 또 다른 새는 화면 중앙을 가로질러 날아오르며 희미한 날개짓의 궤적을 남긴다. 새하얀 몸체 주변으로 퍼지는 옅은 빛의 번짐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잠시 밝아지는 공기의 결을 닮아 있다. 이 정지와 비상의 대비는, 멈춰 있는 시간과 막 떠오르려는 움직임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을 만든다. 이 장면 앞에 서면, 먼저 눈을 끄는 것은 갈대와 가지가 만들어낸 복잡한 선들의 숲이지만, 조금 더 머물다 보면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흐름과 물가의 고요가 서서히 드러난다. 날아오르는 새의 흰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자는 어느새 물가 한쪽에 가만히 서서, 소리 없이 지나가는 바람이 이 풍경에 머물다 가는 순간을 함께 지켜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넘어, 한 번 스쳐간 바람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 감각을 조용히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다.
JADEN PARK
인상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개인의 감정과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큰 비중을 둡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한 해에 4,000점 이상의 작품을 그리는 열정적인 작가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전시 경험을 쌓았습니다. 개념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호한 작품을 창조하고 사물을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표현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품 속에 작가 고유의 개성과 감성을 담아내며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섬세한 색채의 조화와 감각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