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파도 (Surging Wave)》
수채,종이
2010 · 150 × 260 cm
작가 노트
하얀 여백 위로 거대한 파도가 세 갈래의 몸을 틀어 올린다. 화면의 대부분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옅은 블루로 채워져 있지만, 중앙을 가르는 깊은 코발트 블루가 한 번 크게 치솟는 순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수평선도, 하늘도 지워진 채 남아 있는 것은 파도의 곡선과 그 안을 따라 흐르는 푸른 결뿐이다. 물결의 마루는 얇게 벗겨진 막처럼 말려 올라가고, 그 아래쪽으로는 층층이 쌓인 블루의 단면이 드러나며, 한 번에 폭발하듯 솟구치는 에너지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끌어당긴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 파도는 한 번에 그어진 선이 아니라, 수없이 겹쳐 찍힌 가는 붓 자국들이 만든 결의 집합으로 보인다. 미세하게 방향을 달리하는 선들이 서로를 따라 흘러가며, 물결의 흐름과 암석의 단층, 근육의 섬유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색이 진하게 눌린 자리와 거의 사라질 듯 옅게 스친 부분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감정이 깊이 꺼져 내려갔다가 다시 치고 올라오는 호흡이 화면 전체에 리듬처럼 남는다. 물이 번져 남긴 가장자리와 섬세한 그라데이션은 순간의 폭발과 그 뒤에 이어지는 잔향을 동시에 붙잡아 두는 흔적처럼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파도는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솟구치며, 한 장면 안에 여러 번의 파동을 겹쳐 놓는다. 막 올라타려는 파도, 정점에 다다른 파도, 이미 부서지기 시작한 파도가 한 화면 안에서 나란히 서 있으면서, 시간의 앞뒤가 한순간으로 압축된 듯한 인상을 만든다. 관람자는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기보다, 파도의 사선과 곡선을 따라 눈을 미끄러뜨리게 되고, 그 움직임을 따라 몸의 중심도 천천히 기울어 간다. 이 작품 앞에 서는 경험은, 실제 바다의 풍경을 보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속에서 한 번 크게 솟구쳤던 감정의 파고와 마주 서는 일에 가깝다. 흰 여백과 옅은 블루 사이를 왕복하다 보면, 화면 속 파도는 바깥에서 밀려오는 힘이 아니라, 안쪽에서 차오르고 터져 나오는 에너지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관람자는 이 거대한 푸른 곡선을 따라 자신의 호흡을 맞춰 보며, 한 번 치솟은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어디로 흘러 사라지는지 조용히 따라가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