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름 (Rising)》
수채,종이
2008 · 54 × 78.5 cm
작가 노트
〈차오름〉은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밀려오르는 거대한 물의 몸을, 수많은 푸른 선들의 결로 쌓아 올린 장면이다. 흰 여백과 맞닿은 수평선 아래로 짙은 남색, 울트라마린, 보랏빛이 겹겹이 이어지며 깊은 바다의 바닥을 만든다. 그 위로 색은 점점 밝아지며, 파도가 부풀어 오르다 빛을 머금는 순간의 결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진 층들을 드러낸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 파도는 한 번에 그어진 선이 아니라, 짧고 촘촘한 획들이 방향을 조금씩 달리하며 겹쳐진 조직에 가깝다. 각 선마다 농도와 채도가 미세하게 달라, 물이 고이고 흔들리고 다시 밀려오르는 시간을 층위로 기록한다. 화면 오른쪽에서 안쪽으로 비스듬히 파고드는 밝은 푸른 띠는 파도의 마루이자, 어둠 속을 헤치고 올라오는 힘의 흐름처럼 보인다. 그 주변으로 번지는 옅은 청색과 보라색의 결은 물 위로 번지는 빛의 숨결을 따라, 차갑고도 부드러운 온도를 함께 전한다. 아래쪽의 검푸른 영역에는 거의 검정에 가까운 남보라와 자주빛이 스며 있어, 발이 닿지 않는 심연의 깊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 어둠 위로 반복되는 곡선들은 파도가 바닥에서부터 차오를 때 생기는 미세한 떨림이자,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의 바닥이 서서히 들리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시선이 어둠에서 밝은 파도의 마루를 따라 위쪽 여백으로 옮겨갈수록, 화면은 실제 풍경이라기보다 안쪽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감정의 수면을 닮아 간다. 관람자가 이 겹겹의 선을 따라 천천히 눈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물의 결과 자신의 호흡이 같은 방향으로 출렁이기 시작한다. 멈춰 있던 파동이 조금씩 높이를 얻어 올라오는 이 장면 앞에서, 〈차오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무언가가 어떻게 모이고, 부풀고,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함께 지켜보자고 조용히 권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