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폭발 (Volcanic Eruption)》
수채,종이
2007 · 37.8 × 52.8 cm
작가 노트
〈화산폭발〉은 한 번의 거대한 폭발이 아니라, 수없이 미세한 세포들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처럼 보인다. 화면 중앙에 자리한 산의 형상은 굵은 선이나 명확한 윤곽 없이, 작은 타원형의 수채 물감이 겹겹이 이어지며 만들어진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은 빈 틈들은 굳지 않은 용암의 틈이자,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감정의 공간처럼 남아 있어, 형태와 공백이 함께 산의 몸을 지탱한다. 산 아래쪽에는 연한 하늘색과 초록, 푸른색이 뒤섞이며 차가운 용암의 흐름을 이룬다. 물처럼 번지는 수채의 특성은 식어가는 열기와 흘러내리는 기운을 동시에 드러내고, 그 위를 덮는 남보라와 진보라의 층은 오래 쌓인 압력과 응축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산의 윗부분으로 갈수록 붉은색과 주황, 노랑이 점점 짙어지며 폭발의 방향을 따라 치솟고, 서로 다른 색의 타원들이 포개지며 불꽃, 연기, 파편이 한꺼번에 뒤섞인 듯한 진동을 만든다.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색 덩어리는 규칙적인 패턴이라기보다, 호흡의 속도에 따라 길이와 간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손의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타원형의 붓질은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박동이자, 몸 안에서 차오르는 감정의 파동처럼 보이며, 화면 가장자리의 넓은 여백은 폭발 이후 남겨진 하얀 공기이자, 아직 닿지 않은 세계의 영역으로 남는다. 이 작품 속 화산은 특정 지형의 재현이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는 어떤 순간의 에너지에 가깝다. 관람자가 시선을 따라 산 아래의 차가운 푸른 층에서 위쪽의 뜨거운 붉은 기운으로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폭발이 풍경 바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화면 앞에 서 있는 동안, 〈화산폭발〉은 한 번쯤 마음속 깊은 곳의 마그마가 어떻게 끓고 식어 왔는지 조용히 떠올려 보라고, 흰 여백 사이로 낮게 웅웅거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