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산 1 (Mossy Mountain I)》
수채,종이
2007 · 38.8 × 54 cm
작가 노트
〈이끼 산 1〉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능선을 이룬 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없이 작은 세포와 포자가 모여 만든 유기체에 가까운 풍경으로 변한다. 화면 아래에서 위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의 윤곽은 굵은 선이 아니라, 초록의 농도와 크기가 다른 점·타원형의 붓질이 겹겹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옅은 라임빛, 깊은 청록, 누른 올리브와 거의 검은 녹색이 서로 스며들며, 산의 표면이 아니라 이끼가 덮인 피부, 살아 있는 조직의 단면을 드러내는 듯하다. 각 점들은 규칙적인 패턴이라기보다, 숨을 고르며 찍어 내려간 손의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촘촘하게 모여 있는 부분에서는 이끼가 수분을 가득 머금고 부풀어 오른 촉감이, 간격이 넓어지는 곳에서는 마른 바람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느껴진다. 흰 점들은 이끼 사이로 비치는 산의 숨구멍이자, 아직 채워지지 않은 공기의 자리처럼 남아 있어, 초록의 덩어리 안에서도 끊임없이 숨이 드나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산의 윗부분으로 시선을 올리면, 동심원처럼 휘돌아 나가는 붓질이 정상의 형태를 만들며 조용한 소용돌이를 이룬다. 그 주변을 감싸는 짙은 녹색과 검은 얼룩들은 음영이자 그늘이면서, 오래 쌓인 시간의 층위를 닮은 고요한 침전물처럼 보인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색은 조금씩 밝아지고, 연두와 노랑이 섞인 부분에서는 햇빛이 이끼 표면에 스며드는 순간의 온기가 번져 나온다. 이 작품 속 산은 특정 지형의 재현이라기보다, 이끼가 산의 몸을 천천히 감싸 안으며 만들어낸 느린 성장의 형상에 가깝다. 관람자가 초록의 결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풍경의 표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자라난 미세한 감정의 층처럼 느껴진다. 화면을 마주한 채 한동안 머물러 있을 때, 〈이끼 산01〉은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한 덩어리의 삶을 이루는 과정, 그 느리고 조용한 호흡을 함께 들어보자고 낮게 속삭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