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땐 주변을봐

오일

2025 · 40 × 50 cm

작가 노트

수평선 가까이로 붉은 태양이 천천히 가라앉고, 물결 위에는 주황과 노랑, 분홍빛이 부서진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짧고 두꺼운 붓질로 쌓아 올린 물감층은 잔잔한 파도 대신,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의 결을 드러내는 것처럼 미세하게 일렁인다. 하늘은 보라와 파랑, 연분홍이 번져 나가며, 어느 한 색으로 규정할 수 없는 저녁의 온도를 채운다. 화면 전체가 소리 없이 식어가는 열기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빛 사이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왼편에는 짙은 녹색의 나무와 풀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 좁은 둑길 위에 몇 사람이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은 세밀하게 묘사되기보다 색의 덩어리로 남아 있어, 구체적인 얼굴 대신 ‘누군가와 함께’라는 감각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물가와 길, 풀밭이 만나는 삼각형의 구도는, 화면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빛의 길과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수평으로 이끈다. 그 사이에서 관람자는 어느새 인물들 곁에 앉아, 같은 방향으로 저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일 특유의 두꺼운 마티에르는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 두려는 몸짓처럼 화면 곳곳에 남아 있다. 붓끝이 지나간 자국 하나하나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마음이 완전히 잠잠해지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제목처럼, 힘들 때 시선은 결국 저 멀리 태양이 남긴 빛의 길이 아니라, 바로 곁의 사람들과 풀잎, 발 아래 좁은 길로 돌아온다.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관람자는 거대한 고민의 바다보다, 지금 곁에 앉아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 존재들을 천천히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만드는 조용한 저녁 풍경이, 오래 남는 위로처럼 화면에 머물러 있다.

김예지

나는 자연을 그리지만, 풍경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파도와 숲, 꽃과 하늘,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은 삶의 시간과 마음의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며, 그 순환 속에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회복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화면을 채우는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지나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 머무는 자리이다. 두터운 질감과 깊이 있는 색채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생명의 숨결과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고, 결국 사랑은 생명의 순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는다고 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을 향한 기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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