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잔이넘치나이다

아크릴

2023 · 70 × 50 cm

작가 노트

짙은 노란빛의 해바라기들이 한데 모여, 화면 중앙의 꽃병에서 폭발하듯 솟아오른다. 둥근 꽃병의 경계를 넘어서 위로, 옆으로, 아래로까지 뻗어나간 꽃들은 더 이상 ‘꽂혀 있는’ 정물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넘쳐흐르는 에너지 그 자체처럼 보인다. 칼자국이 그대로 살아 있는 두꺼운 물감층은 꽃잎 하나하나를 단단한 빛의 조각으로 바꾸어 놓고, 초록 잎과 줄기 사이로 스며든 어두운 색들은 이 환한 노란색이 얼마나 힘껏 피어올랐는지 조용히 받쳐 준다. 배경은 보라와 파랑, 자주색이 거칠게 뒤엉킨 색의 장이다. 현실의 벽이나 테이블이 아니라, 감정이 부딪히고 뒤섞이는 내면의 공간에 가까운 이 바탕 위에서 해바라기들의 노란색은 더 강하게 튀어 오른다. 곳곳에 튄 노란 물감 조각들은 꽃송이에서 흘러나온 빛이 주변을 덮어버린 흔적처럼, 화면 전체를 작은 축제의 현장으로 만든다. 꽃병 아래로 흘러내린 세 송이의 해바라기와 떨어진 꽃잎들은, 이 풍성함이 단지 장식적인 과잉이 아니라, 감당하기 벅찰 만큼 커진 마음이 결국 가장자리까지 스며 나와 버린 상태를 보여준다. 붓보다는 팔 전체로 밀어 올린 듯한 거친 터치는, 차분한 정물화의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급한 숨과 닮아 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관람자는 화면을 가득 채운 노란빛 사이로, 자신의 삶에서 이미 넘쳐흐르고 있는 것들—축복, 감사, 혹은 말로 다 담지 못한 마음—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된다. 작품은 그 조용한 깨달음 속으로, 관람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를 기다리며 환한 잔을 내밀고 있다.

김예지

나는 자연을 그리지만, 풍경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파도와 숲, 꽃과 하늘,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은 삶의 시간과 마음의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며, 그 순환 속에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회복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화면을 채우는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지나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 머무는 자리이다. 두터운 질감과 깊이 있는 색채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생명의 숨결과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고, 결국 사랑은 생명의 순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는다고 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을 향한 기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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