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아크릴,모래
2025 · 50 × 50 cm
작가 노트
짙은 코발트와 터키블루가 뒤섞인 화면은 바다이자 호수이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마음이 찾아온 쉼터처럼 펼쳐진다. 모래가 섞인 아크릴 물감이 두텁게 쌓인 수면은 잔잔한 물결과 빛의 파편을 동시에 품고 있어, 바라보는 동안 서서히 호흡이 느려지는 듯한 리듬을 만든다. 화면 아래를 가득 채운 데이지 꽃밭은 부드러운 흰빛과 노란 중심으로 반짝이며, 일상의 소음 대신 꽃향기와 바람 소리만이 남은 오후를 떠올리게 한다. 그 한가운데,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나무에 매달린 그네에 앉아 푸른 수면을 마주 보고 있다. 도시의 실루엣은 멀리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떠오르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면서도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그려져 있다. 여인은 도시를 등지지도, 완전히 향하지도 않은 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멈춰 서 있다. 뒤엉킨 시간과 역할, 관계의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자기 안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다. 굵게 뻗은 나무줄기와 그 위에서 늘어진 가지는 그네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여인을 잠시 품어주는 보호막처럼 보인다. 나무 아래에 기대어 선 자전거와 노란 바구니 속 꽃들은 이곳이 우연히 스쳐 지나온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온 작은 여행의 목적지임을 암시한다. 움직임을 멈춘 바퀴와 공중에 떠 있는 그네는 정지와 흔들림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품고, 그 사이에서 마음도 천천히 균형을 찾아간다. 이 작품에서 쉼표는 완전한 정지도, 돌아갈 수 없는 이별도 아니다. 다시 도시로, 다시 일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짧게 찍어 두는 숨표, 그 짧은 틈 사이로만 보이는 색과 빛의 풍경이다. 관람자는 꽃밭 가장자리에 앉아 있거나, 나무에 기대어 서 있거나, 혹은 그네에 함께 올라탄 마음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에게도 필요했던, 혹은 지금 막 필요해진 하나의 쉼표를 떠올리며, 푸른 수면 위로 번져가는 고요한 빛을 따라 천천히 눈을 머물게 된다.
김예지
나는 자연을 그리지만, 풍경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파도와 숲, 꽃과 하늘,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은 삶의 시간과 마음의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며, 그 순환 속에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회복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화면을 채우는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지나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 머무는 자리이다. 두터운 질감과 깊이 있는 색채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생명의 숨결과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고, 결국 사랑은 생명의 순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는다고 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을 향한 기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