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아크릴,모래

2025 · 25 × 25 cm

작가 노트

짙은 남청과 코발트 블루로 채워진 바다는 화면 중앙에서 단단한 수평선을 이루며, 그 위로 옅은 터키블루와 흰빛이 뒤섞인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아크릴과 모래가 섞인 거친 표면은 고운 모래사장을 닮은 질감을 만들면서도, 마음속에 남은 작은 주름과 피로를 함께 드러내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하늘과 바다, 모래의 색들이 불규칙한 붓질과 입자로 흩어져 있지만, 한 발 물러서면 그 모든 흔들림이 하나의 고요한 풍경으로 가라앉는다. 화면 아래,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모래 위에 드리운 발자국 대신, 살짝 치켜든 치맛자락과 한 손으로 모자를 부여잡은 몸짓이 그녀가 막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순간을 보여준다. 뒤에서 비추는 따뜻한 빛은 노란 드레스를 더욱 밝게 번지게 하고, 그 옆으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지금 이 시간이 잠시 멈춘 쉼의 장면임을 조용히 강조한다. 해변가에 줄지어 선 파라솔과 파란 의자들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며, 비어 있는 자리마다 “이곳에 잠시 앉아도 좋다”고 말하는 듯 관람자를 맞이한다. 화면 상단의 야자수 잎은 프레임 안으로 부드럽게 드리워져,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사이에 그늘과 안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 풍경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도, 지나간 후도 아닌, 그 사이에 놓인 한 호흡의 순간이다. 끝없이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파도처럼, 삶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허락하는 작은 쉼표 하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관람자는 노란 드레스를 따라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천천히 떠올리게 된다.

김예지

나는 자연을 그리지만, 풍경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파도와 숲, 꽃과 하늘,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은 삶의 시간과 마음의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며, 그 순환 속에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회복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화면을 채우는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지나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 머무는 자리이다. 두터운 질감과 깊이 있는 색채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생명의 숨결과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고, 결국 사랑은 생명의 순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는다고 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을 향한 기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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