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아크릴,모래

2025 · 20 × 20 cm

작가 노트

짙은 남청과 코발트 블루가 뒤섞인 하늘 위로 보랏빛과 분홍, 연보라가 부드럽게 번지며 하나의 거대한 은하수처럼 펼쳐진다. 화면 곳곳에 흩뿌려진 노란 점들은 별빛이자, 하루를 통과해 남은 수많은 생각의 조각처럼 반짝인다. 모래가 섞인 아크릴 물감이 만들어낸 거친 표면 위로 색이 겹겹이 쌓이면서, 밤하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께를 가진 공간으로 느껴진다. 하단 중앙에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린 한 여인이 작은 실루엣으로 서 있다. 발밑의 길은 어둡고 단단한 색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그녀의 몸 주변으로는 노랑과 오렌지, 연분홍빛이 번져 나오며 마치 안쪽에서부터 은은히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하다. 주변의 나무들은 검푸른 실루엣으로 둘러서 있어, 이 인물이 혼자가 아니라 자연의 품 안에 잠시 기대어 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 멈춰 선 몸은 정지해 있지만, 위로 뻗은 팔과 하늘을 향한 시선은 다음을 향해 조용히 열려 있다. 이 작품에서 밤하늘은 끝나지 않는 어둠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아와 숨을 고를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처럼 다가온다. 수없이 흩어진 별빛 사이로 번져 오르는 색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자는 어느새 화면 속 인물의 자리로 옮겨 서게 된다. 잠시 모든 소음을 내려놓고, 자신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 사이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 보는 순간, 그 고요한 틈 사이로만 보이는 빛의 풍경이 천천히 마음속에 번져 들어온다.

김예지

나는 자연을 그리지만, 풍경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파도와 숲, 꽃과 하늘,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은 삶의 시간과 마음의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며, 그 순환 속에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회복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화면을 채우는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지나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 머무는 자리이다. 두터운 질감과 깊이 있는 색채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생명의 숨결과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통해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고, 결국 사랑은 생명의 순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는다고 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을 향한 기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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