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디지털
1996 · 35 × 50 cm
작가 노트
거칠게 긁어낸 듯한 디지털 붓질 사이로, 한 인물이 창가에 몸을 기대고 서 있습니다. 회색과 남색이 뒤섞인 배경은 실내인지 실외인지 분명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치 오래된 건물의 어둠과 밤공기가 뒤엉킨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오른쪽의 벽면은 붉은기와 회색이 섞인 벽돌 질감으로 남아 있어, 이 인물이 어딘가 닫힌 장소에 머물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완전히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은 윤곽 덕분에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 기억 속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창틀 위에 팔을 포개고 선 여성의 몸은 부드러운 살색과 붉은 기가 감돌며, 배경보다 훨씬 따뜻한 온도로 떠오릅니다. 목과 어깨, 팔뚝을 따라 번지는 붉은 빛은 실제 조명이라기보다 내면의 체온이 밖으로 스며 나온 듯한 인상을 주고, 흰색 상의는 그 위에서 조용한 하이라이트가 되어 시선을 얼굴 쪽으로 이끕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등 뒤로 크게 펼쳐진 흰 날개인데, 깃털 하나하나를 세밀히 묘사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번진 터치로 형상을 잡아, 현실의 물질감보다는 ‘날개를 달고 있다’는 상태 자체를 상징처럼 남겨 둡니다. 인물의 시선은 화면 위쪽,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살짝 들어 올려져 있습니다. 뚜렷한 표정 대신 턱선과 코, 눈가에 얹힌 연한 빛만이 감정을 대신하는데, 그것은 기대와 갈망, 혹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을 향한 조용한 상상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날개는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인물은 여전히 창틀 안쪽에 서 있고, 주변을 둘러싼 어둡고 거친 붓질은 이 장면이 완전한 해방의 순간이 아니라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문턱의 시간임을 드러냅니다. 관람자는 이 인물을 특정한 천사나 캐릭터로 보기보다, 스스로의 몸에 한 번쯤 상상으로 덧입혀 본 날개의 기억과 마주하게 됩니다. 무거운 벽과 가벼운 깃털, 어두운 밤과 인물의 피부에 번지는 온기 사이를 따라 눈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이 장면은 초현실적인 판타지라기보다, 아직 말로 다 건네지지 않은 소망이 잠시 형태를 얻은 순간처럼 다가옵니다. 마치 창가에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지금 자신의 어깨 뒤에도 조용히 접혀 있을지 모를 날개의 감각을 한 번 떠올려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