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디지털
2002 · 36 × 41 cm
작가 노트
짙은 파란 밤을 배경으로, 원형 바의 안쪽에 한 여성이 몸을 기댄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친 나무 질감과 짚으로 엮인 지붕, 노란 조명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색감은, 이곳이 도시의 바가 아니라 어딘가 남쪽 섬의 야외 바라는 상상을 불러옵니다. 디지털로 그려진 선들은 손으로 빠르게 스케치한 듯 남겨져 있어, 막 밤공기를 마시며 자리에 앉은 듯한 즉흥적인 기분을 전합니다. 흰 비키니와 초록빛 머리띠, 붉은 입술이 만들어내는 색의 대비는 인물을 이 밤의 중심으로 끌어올립니다. 턱을 괴고 상체를 내민 자세, 살짝 치켜든 시선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이라기보다, 막연히 다가올 무언가를 상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바 안쪽의 잔과 병, 거품이 이는 맥주와 와인병은 작은 무대 장치처럼 배치되어, 이 여름밤이 혼자이면서도 충분히 풍성한 순간임을 암시합니다. 앞쪽에 비어 있는 두 개의 의자는 관람자를 위한 자리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가느다란 철제 선으로 그려진 의자와 테이블은 실제보다 가볍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만큼 이 장면이 현실과 상상 사이에 떠 있는 한 장면임을 드러냅니다. 잠시 이 의자에 앉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여행지의 바다 냄새와 밤공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몸의 느슨함이 조용히 스며들며, 각자의 기억 속 여름밤 한 페이지가 이 장면 위로 겹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