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pstick》
오일
2026 · 85 × 55 cm
작가 노트
연분홍과 연보라, 옅은 하늘빛이 겹겹이 번지는 화면 속에서 한 여성은 눈을 감은 채 립스틱을 바르고 있습니다. 피부와 배경, 꽃의 색이 서로 스며들어 인물과 주변을 나누는 경계는 거의 사라지고, 입술만이 또렷한 붉은색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른편에는 마치 거울 속 반사처럼 또 다른 인물이 겹쳐 서 있는데, 그녀 역시 립스틱을 들고 있지만 선과 색은 더 옅어져 환영에 가까운 존재처럼 보입니다. 두 인물 사이에서 꽃잎과 잎사귀들이 피어오르며, 한 몸에서 번져 나온 감정이 여러 겹의 얼굴과 몸으로 나뉘어 퍼지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유화 물감이 두텁게 쌓인 꽃송이들은 실제의 꽃이라기보다, 입술 위에 얹히는 색과 향이 시각적으로 확장된 형상처럼 읽힙니다. 부드럽게 번진 붓질과 캔버스의 거친 결이 그대로 드러난 표면은, 피부와 꽃잎, 공기의 촉감을 한 번에 품고 있어 인물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립스틱을 쥔 손의 작은 떨림, 목선과 어깨를 따라 흐르는 미묘한 색의 변화는,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고 만들어 가는 의식의 순간을 조용히 강조합니다. 이 장면 앞에 서 있으면,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기보다는, 자신 안의 또 다른 얼굴을 불러내는 주문처럼 느껴집니다. 화면 속 인물과 그녀의 반사된 모습, 그리고 꽃으로 채워진 배경 사이에 시선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관람자는 어느새 자신이 거울 앞에 선 사람인지, 거울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입술에 닿는 한 줄기의 색이 마음속 여러 겹의 꽃을 깨우는 순간을 떠올리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완성해 온 얼굴과 하루를 조용히 떠올리게 하는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