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nny _ 초심자

오일 파스텔,종이

2025 · 29.7 × 43 cm

작가 노트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토끼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두툼한 선으로 그려진 눈은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과 함께 반쯤 감겨 있고, 입은 살짝 일그러진 채 멍한 표정을 띠고 있다. 부드러운 색감과는 달리 오일 파스텔로 거칠게 문질러진 표면 때문에, 토끼의 얼굴은 포근한 인형이라기보다 복잡한 감정이 뭉쳐진 덩어리처럼 보인다. 토끼의 이마와 주변을 가로지르는 붉은 글자와 기호들은 명확히 읽히지 않는 단어들, 말이 되기 전의 소리들처럼 화면 위를 떠돈다. 하트와 별,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이 조각들은, 초심자라는 제목처럼 아직 서툰 언어와 감정의 연습장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하지만, 정확한 문장이 되지 못한 채 색과 선의 형태로 튀어나온 생각들이다. 배경 곳곳에 번지는 노랑, 주황, 연두의 선들은 토끼 주위를 둘러싼 소음이자 리듬처럼 작동한다. 한쪽 구석의 작은 동물 실루엣과 해 모양, 둥글게 말린 선들은 장난스럽고 유치한 낙서처럼 보이지만, 화면을 가득 채운 이 ‘낙서들’ 덕분에 토끼의 느릿한 표정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몸과, 여전히 쉬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이 화면 전체를 가볍게 떨리게 한다. 이 작품 앞에 서면 관람자는,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 정확히 읽히지 않아도 계속 흘러나오는 말들의 틈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피곤해서 멍해진 토끼의 눈을 따라 자신의 하루를 떠올리다 보면, 잘 정리된 문장보다 이렇게 흐트러진 색과 모양 속에서 더 솔직한 마음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이루미

Cica solo young artist exhibition 2026.10.2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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