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nny_ burn

오일 파스텔,종이

2025 · 29.7 × 43 cm

작가 노트

검게 그려진 둥근 프라이팬 안에 노란빛의 토끼 얼굴이 동그랗게 말려 있다. 감긴 눈과 축 늘어진 입매, 힘이 빠진 귀의 윤곽은 잠든 얼굴처럼 보이지만, 화면 전체를 감도는 붉은색과 주황의 기운은 이 휴식이 온전한 안식이라기보다 뜨거운 열기 위에 놓인 상태임을 드러낸다. 토끼의 살결을 이루는 노랑과 주황의 겹겹은 따뜻함과 경고의 색을 동시에 품고, 편안함과 소진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만든다. 팬을 둘러싼 짙은 회색의 고리는 보호막이자 테두리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로 번져 나가는 붉은 선들은 불꽃처럼 화면을 스쳐 지나간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초록과 노랑, 파랑의 수평선은 식탁이자 무대, 혹은 일상의 바닥을 연상시키며, 그 위에 반복되는 붉은 곡선들은 타오르는 불길, 피곤에 지친 몸의 맥박, 소음처럼 겹쳐 읽힌다. 토끼가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동안, 화면 아래쪽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리듬이 멈추지 않고 꿈틀거린다. 오일 파스텔 특유의 두꺼운 마찰 자국과 긁힌 흔적은 부드러운 동물의 이미지에 거친 촉감을 더한다. 사랑스럽고 나른한 캐릭터처럼 보이는 이 토끼는, 동시에 과열된 일상 위에 올려진 한 사람의 몸을 은유한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잠들어 버린 것인지, 잠든 척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관람자는 이 둥근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피로와 게으름, 그리고 버너 위처럼 뜨거운 하루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불을 끄지 않은 채 잠시 눈을 감아 버린 순간처럼, 이 장면은 편안함과 위험이 겹쳐 있는 짧은 틈을 보여 준다. 화면 앞에 서면 관람자는 팬 가장자리의 어두운 고리와 토끼의 노란 얼굴 사이, 그리고 아래에서 타오르는 붉은 기호들 사이에 서게 된다. 지금 나를 지치게 하는 열기는 어디에서 올라오고 있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나는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는지, 천천히 마음속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이루미

Cica solo young artist exhibition 2026.10.2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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