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nny_초작_ 안정》
오일 파스텔,종이
2024 · 297 × 430 cm
작가 노트
파란 바다와 초록 물결이 뒤섞인 화면 위로, 노란빛이 번진 둥근 섬 같은 덩어리가 떠 있다. 그 위에 작은 토끼 얼굴이 몸을 말고 잠든 채 놓여 있다. 눈을 꼭 감은 속눈썹과 살짝 말린 입매, 한쪽으로 휘어진 귀의 선은 아이처럼 깊이 잠든 순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얼굴을 감싸는 선명한 주황색 윤곽은 이 휴식에 또렷한 온도와 기운을 더한다. 포근한 섬 위에 누워 있지만, 토끼 주변을 도는 색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리듬을 품고 있다. 섬을 이루는 노랑과 흰색의 터치는 부드러운 이불이자 햇빛이 내려앉은 모래처럼 보인다. 두텁게 쌓이기보다 거칠게 긁히고 스쳐 지나간 오일 파스텔의 자국들은, 완전히 편안한 정지 상태라기보다 잠깐 몸을 내려놓은 틈새 같은 느낌을 만든다. 토끼의 몸 아래로 스며드는 주황과 노랑의 흔적은, 쉬고 있으면서도 쉽게 식지 않는 마음의 열기를 은근히 드러낸다. 배경의 파랑과 초록은 물결이자 시간의 흐름처럼 화면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규칙적이지 않은 수평선의 리듬은 토끼가 누워 있는 이 작은 섬이, 바쁜 하루의 한가운데 떠 있는 잠깐의 쉼터라는 인상을 준다. 손을 뻗으면 금방 밀려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이 섬 위에서, 관람자는 토끼의 닫힌 눈을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마지막으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잠시 모든 파도를 멀리 밀어 두고, 이 느슨하고 나른한 표정을 함께 따라 해 보고 싶어지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