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아크릴,캔버스

2024 · 60.5 × 45.5 cm

작가 노트

화면 중앙에는 투박한 화분 같은 형상이 크게 자리하고, 그 안에서 한 마리의 고래가 몸을 반쯤 드러낸 채 잠겨 있다. 선인장을 대신해 등장한 이 고래는 물이 아닌 화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파랑의 두터운 터치 덕분에 여전히 바다의 기억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몸 주변으로 쌓인 흰색의 덩어리들은 흙이자 물결, 그리고 거품처럼 겹쳐 읽히며, 이 작은 그릇이 사실은 아주 작은 그의 공간임이 느껴진다. 화분을 이루는 갈색과 노랑, 회색의 색층은 단단한 벽이 아니라, 안과 밖을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막처럼 느껴진다.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 세로의 붓질은 물길이자 눈물, 혹은 시간의 줄기처럼 화면을 타고 내려오며, 고래가 이 공간에 머물기까지 지나온 흔적을 조용히 암시한다. 고래의 어두운 눈은 정면을 향하기보다 살짝 옆으로 비켜 있어, 이곳에 완전히 적응해 버려 ㅐ완전히 떠나지 못한 존재의 망설임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배경을 채운 보랏빛·푸른빛 하늘에는 노란 별들이 거칠게 번져 있다. 별들은 점잖게 빛나기보다, 튀어나온 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화면을 찌른다. 선인장의 가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별빛은, 상처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둠을 뚫고 길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한다. 고래를 둘러싼 하얀 점과 파편들은 물보라이자 별가루처럼 떠다니며, 이 화분이 단지 실내의 작은 오브제가 아니라, 밤하늘과 바다가 한 번에 겹쳐지는 무대임을 드러낸다. 아크릴 특유의 두꺼운 질감과 긁힌 자국들은 단정한 풍경을 만드는 대신, 이 장면에 머문 감정의 떨림을 그대로 남겨 둔다. 바다에 있어야 할 고래, 가시를 품어야 할 선인장의 자리에 서로가 뒤섞인 이 이미지는, 내가 속해 있다고 믿어 온 자리와 실제로 머물고 있는 장소 사이의 간격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자는 이 화분 앞에서, 고래의 시선과 별빛 사이 어딘가에 서게 된다. 지금 나를 숨 쉬게 하는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서 파도 치는 바다는 어디에 남아 있는지, 천천히 마음속 질문을 꺼내 보게 된다.

이루미

Cica solo young artist exhibition 2026.10.2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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