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칠까 serise_관계》
오일 파스텔,종이
2026 · 29.7 × 43 cm
작가 노트
베이지색 바탕 위에 파란 사각형들이 겹쳐진 몸이 앉아 있다. 네모난 머리와 몸통, 각진 팔과 다리, 머리 위로 뻗은 더듬이까지, 인물은 로봇처럼 단순한 도형으로 조립되어 있지만, 거칠게 문질러진 오일 파스텔의 결 때문에 완전히 차갑지도, 매끈하지도 않다. 입과 눈은 작은 점과 선으로만 남아 있어, 표정을 읽으려 할수록 더 모호해진다. 단단한 블록처럼 보이면서도, 표면을 긁고 지나간 흰 기운 속에서 조심스러운 숨결이 새어 나온다. 인물을 둘러싼 공간에는 주황, 보라, 초록, 청록의 기하학적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네모, 동그라미, 마름모로 나뉜 이 형체들은 장난감이자 말풍선처럼 보이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는 생각과 마음의 조각을 닮아 있다. 각기 다른 색과 두께로 칠해진 이 조각들은 인물에게 다가가려는 듯 주변을 맴돌지만, 화면 속에서는 어느 것도 완전히 맞물려 하나의 장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관계라는 이름의 장은 이렇게 느슨한 거리와 어긋난 각도들로 채워져 있다. 바탕의 베이지색은 비어 있는 여백이 아니라, 여러 번 덧칠하고 문질러 지워낸 흔적들로 인해 마치 오래 쓰인 책장이나 바닥처럼 보인다. 그 위에 올려진 파란 인물과 색색의 도형들은, 시간이 쌓인 공간 위에 잠시 머무는 존재들이다. 관람자는 이 네모난 몸의 곁에 앉아,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물, 말들 사이의 간격을 한 번 더 더듬어 보게 된다. 어느 쪽으로 팔을 뻗어야 서로의 모서리가 덜 아플지, 이 투박한 파랑의 실루엣과 흩어진 색의 조각들을 따라 천천히 상상하게 되는 장면이다.